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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 업적은 어느 정도 봤는데 무신정권, 몽골 침입, 원 간섭기가 한 덩어리로 섞이는 사람에게 맞는 글입니다. 특히 `최우`, `강화도 천도`, `삼별초`, `권문세족`, `공민왕`이 같은 보기 안에 있으면 순서를 잡기 어렵습니다.
시험 직전에는 고려 후기를 아주 자세히 넓히기보다 앞뒤 관계를 먼저 고정해야 합니다. 어느 사건이 원 간섭기 이전인지, 어느 단서가 원 간섭기 안인지, 어느 단서가 공민왕의 반원 개혁인지부터 나누세요.
고려 후기는 네 칸으로 자르면 됩니다
고려 후기를 한 번에 외우면 무겁습니다. 먼저 `무신정권`, `몽골 침입과 대몽 항쟁`, `원 간섭기`, `공민왕 반원 개혁` 네 칸으로 자르세요.
무신정권은 문신 중심 질서가 무너지고 무신이 정권을 장악한 시기입니다. 몽골 침입은 최씨 무신정권이 이어지던 중 벌어진 대외 전쟁입니다. 원 간섭기는 전쟁과 강화를 거친 뒤 고려의 자주성이 흔들린 시기입니다. 공민왕은 그 간섭에서 벗어나려 한 개혁 군주입니다.
1170년 무신정변은 고려 후기 흐름의 출발점입니다
무신정권은 1170년 정중부 등이 일으킨 무신정변에서 시작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무신정권을 성립기, 확립기, 붕괴기로 나누며 1170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 흐름으로 설명합니다.
한능검에서는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을 모두 같은 무게로 길게 외우기보다 `무신정변으로 문신 중심 정치가 무너졌다`는 출발점을 먼저 잡으면 됩니다. 이후 최충헌이 등장하면서 최씨 정권으로 굳어집니다.
최충헌부터 최의까지는 최씨 정권 4대 세습으로 묶습니다
무신정권에서 시험 단서가 가장 선명한 구간은 최씨 정권입니다. 최충헌은 권력 기반을 세우고, 최우는 몽골 침입기에 강화도 천도를 이끈 인물로 자주 연결됩니다.
순서는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입니다. 보기에서 `교정도감`, `최씨 정권`, `강화도 천도`, `몽골 침입`이 함께 보이면 고려 무신정권 중후반으로 좁히면 됩니다.
최씨 정권은 1258년 최의가 제거되면서 무너집니다. 하지만 무신정권 전체가 그날 바로 끝난 것은 아니고, 김준, 임연, 임유무로 이어지다가 1270년에 완전히 정리되는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1231년 몽골 침입은 최씨 무신정권 중에 시작됩니다
몽골의 고려 침입은 1231년에 시작됩니다. 우리역사넷은 1231년 1차 침입부터 1259년 강화까지 몽골의 고려 침입이 거의 30년에 걸쳐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시험에서는 `몽골 침입`이 보이면 곧바로 `무신정권 이후`로 밀어 넣으세요. 즉 무신정변보다 뒤이고, 원 간섭기보다 앞입니다. 이 위치만 고정해도 고려 후기 순서 문제가 크게 줄어듭니다.
1232년 강화도 천도는 최우와 함께 붙입니다
몽골 침입 직후 최씨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전을 이어 갔습니다. 시험용으로는 `최우`, `강화도 천도`, `팔만대장경 조판`, `대몽 항쟁`을 한 묶음으로 두면 됩니다.
강화도 천도는 고려가 몽골과 싸우던 항쟁기의 단서입니다. 아직 원 간섭기 단서가 아닙니다. `정동행성`, `공녀`, `권문세족`과 같은 간섭기 키워드와 섞지 마세요.
처인성 김윤후와 충주성 항전은 대몽 항쟁 단서입니다
우리역사넷은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몽골군 장수 살리타이를 죽인 사례, 충주성에서 백성들이 항전한 사례를 대몽 항쟁의 주요 장면으로 설명합니다.
한능검에서는 이 단서들이 나오면 `몽골 침입에 맞선 항쟁`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왕 업적 문제처럼 왕 이름을 먼저 찾기보다, 몽골 침입기라는 큰 칸을 먼저 잡는 것이 빠릅니다.
1259년 강화와 1270년 개경 환도는 순서 문제의 경계입니다
1259년에는 고려와 몽골 사이에 강화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바로 안정된 것은 아니고, 1270년 개경 환도와 무신정권의 완전 몰락, 이후 삼별초 항쟁까지 이어집니다.
순서 문제에서는 `강화`가 먼저, `개경 환도`가 그다음, `삼별초 항쟁`이 이어진다고 잡으면 됩니다. 이 경계를 알고 있으면 몽골 침입기와 원 간섭기의 접점을 덜 헷갈립니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 반대와 대몽 항쟁 연장으로 봅니다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돌아가려 하자 삼별초는 이를 거부하고 진도와 제주도로 이동하며 항쟁을 이어 갔습니다. 우리역사넷은 삼별초 항쟁이 1273년 진압되며 막을 내렸다고 설명합니다.
시험에서는 `배중손`, `진도`, `김통정`, `제주도`, `삼별초`가 보이면 1270년 개경 환도 이후의 흐름으로 처리하세요. 강화도 천도보다 뒤, 원 간섭기 본격화 직전 또는 접점에 놓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원 간섭기는 고려 왕조는 남았지만 자주성이 흔들린 시기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원간섭기에 고려 왕조는 유지되었지만 원의 간섭으로 자주성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영토 일부에는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같은 원의 지방 관청이 설치되었습니다.
한능검 보기에서는 `정동행성`, `쌍성총관부`, `부마국`, `충렬왕·충선왕처럼 충 자가 붙은 왕`, `공녀`, `몽골풍`, `권문세족`이 원 간섭기 단서입니다.
권문세족은 원 간섭기 지배층 단서입니다
원 간섭기 이후에는 원과의 관계를 이용해 성장한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커졌습니다. 우리역사넷은 몽골 귀족과의 혼인, 몽골어 능력, 전공 등을 통해 출세한 사람들이 친원 세력으로 성장한 사례를 설명합니다.
보기에서 `권문세족`, `대농장`, `친원 세력`, `공녀`, `몽골풍`이 함께 보이면 고려 후기 원 간섭기 사회 변화로 묶으세요. 무신정권의 중방이나 교정도감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공민왕은 원 간섭기에서 벗어나려 한 반원 개혁 군주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반원 자주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시험에서는 `기철 등 친원 세력 숙청`, `쌍성총관부 수복`,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전민변정도감`을 공민왕 단서로 봅니다.
공민왕은 고려 왕 업적 글에서도 중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원 간섭기의 끝을 흔드는 개혁 단서로 다룹니다. 즉 공민왕은 무신정권이나 대몽 항쟁이 아니라 원 간섭기 후반의 반원 개혁 쪽입니다.
보기 함정은 무신, 몽골, 원, 공민왕으로 가르면 됩니다
보기에서 `중방`, `교정도감`, `최충헌`이 보이면 무신정권입니다. `강화도 천도`, `김윤후`, `처인성`, `팔만대장경`, `삼별초`는 몽골 침입과 대몽 항쟁입니다.
`정동행성`, `쌍성총관부`, `공녀`, `몽골풍`, `권문세족`은 원 간섭기입니다. `기철 숙청`, `쌍성총관부 수복`,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 반원 개혁입니다. 이 네 묶음을 먼저 나누면 보기 제거 속도가 빨라집니다.
시험 직전에는 6줄만 남기세요
1170 무신정변으로 무신정권이 시작됩니다. 1196 최충헌 이후 최씨 정권이 굳어집니다. 1231 몽골 침입이 시작되고 1232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합니다.
1259 고려와 몽골이 강화합니다. 1270 개경 환도와 무신정권 몰락 뒤 삼별초가 항쟁하고, 1273년에 진압됩니다. 이후 원 간섭기에는 권문세족과 공녀, 몽골풍이 보이고, 공민왕은 반원 개혁으로 쌍성총관부를 수복합니다.